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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고대사의 숨겨진 진실, 사마천의 사기詐欺는 정보화시대 도래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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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ana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4-08-24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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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고구려$ 중국의 살길은 오직 “거짓 만들기 ‘동북공정‘”- 태초의 동북아 역사, “한국, 중국, 일본 어디에서 왔나?”[사진=책보고(유튜버)/페르시아가 만든 신라지도]한국, 중국, 일본은 사실 비슷한 나라이다. 알고 보면 이 세 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인구 구성은 환인, 환웅, 고조선으로 맥을 잇는 뿌리, 동이족에서 출발했다. 일본은 구당서 등 중국기록에도 정확히 동이족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두말할 필요가 없다.​중국은 우리 조상 환웅시대 14대 왕인 자오지 환웅, 즉 치우천왕과 싸웠다는 황제 헌원을 문명의 조상이자 그들 최고의 조상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늦은 나라였다.​게다가 당시 치우천왕은 최초로 금속제 무기를 사용해 오늘날의 중국인 역시 전쟁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다.​너무도 당연히 동이족의 뿌리를 갖고 있는 부여, 맥, 옥저,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사람들이 모두 동이족이고, 중국의 뿌리라고 하는 ‘하나라’ 역시 모두 동이족이 그 뿌리이다. 즉 한중일을 잇는 뿌리는 모두 동이족일 수밖에 없다. 뿌리가 동이족인데 나중에 갈라졌다고 중국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한마디로 부산고구려$ 지금의 중국은 여러 민족을 이루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결국 중국은 알고 보면 역사 전체가 동이족이 차지했던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중국이라는 명칭을 갖고 세상에 중심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그들 역사 전체는 동이족의 역사, 환웅, 환인, 고조선의 역사가 그 뿌리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의 상징인 치우천왕은 최초로 금속제 무기를 사용한 전쟁의 신으로 BC 2707년 14대 자오지 환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시 치우천왕과 싸움을 해 이겼다고 주장하는 중국 문명의 시조이다. 그들이 조상으로 모시는 황제 헌원이 어느 나라 왕을 했는지도 몰라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으로 만들었지만, 그 역시 동이족이었다. 황제 헌원의 아들 소호 금천이 바로 우리나라 김씨의 시조이다. 즉 황제 헌원의 김씨가 중국 성씨라는 것이 아니고 이들 모두가 우리 조상이라는 말이다.​그런데 중국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 때 사마천이 황제 헌원을 자기들 조상으로 만들면서 분화된 것이다. 당시에는 책으로 남기면 모든 것이 부산고구려$ 끝났던 시절이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詐欺)는 영원히 묻힐 뻔했다. 당시 사마천은 수천 년이 흘러 인터넷 시대가 도래할 줄 몰랐을 것이다.​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재단하면 지금부터 무 자르듯 자르면 잘라질 것처럼 보였던 역사가 세상 밖으로 정보가 결합하고 조각들이 이어지며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완전히 달라진 진짜 역사를 서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결국 중국은 동북공정이 아니면 자신들의 역사가 없는 것이 된다. 아니면 한국인과 동일하게 우리 조상이라고 하지 않으면 중국은 송두리째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달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역사를 통째로 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해 최대한 한반도까지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켜야만 했다.​옛말에 한국의 성씨는 중국에서 넘어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진짜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그쪽도 한국이고 이쪽도 한국이었다. 영토가 그랬다는 것이다. 워낙 오랜 역사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왕의 재위 기간에 따라 영토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통으로 신라는 경상도, 가야는 경상도 일부와 전라도 일부, 백제는 충청도와 부산고구려$ 전라도, 한반도 북쪽은 고구려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긴 역사에서 우리의 무지가 발견되는 순간이다.​삼국사기 기록에 부산은 백제 땅이었고, 지금 충청도에 있는 공주는 신라 땅이었다. 이것만 보면 전라도 땅은 신라이어야 하고, 경상도 땅은 백제 땅이어야 맞다. 이런 이유로 삼국사기를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는 한국 역사가들의 단견이나 일본의 식민사관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적어도 한반도로만 우리 역사를 해석하면 그렇다. 우리는 이런 역사가들을 반도사관, 식민사관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신채호 선생이 주장하는 역사가 우리의 민족사관임은 분명하지만, 신채호의 역사는 수정이 안 되는 역사로 인식해서도 안 된다. 즉 그 이후에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 역사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민족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 역시 조선시대 사람이었고 그 이후 중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라와 백제의 역사가 있으며 중국 북부에서 발견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명들을 재해석해서 새롭게 한국의 역사 영토를 규정하는 것에 고정관념을 가져서도 안 된다.​역사는 늘 새로운 사실이 생기면 그동안 연구 성과가 부산고구려$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수정돼야 한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 그것이다. 폴란드 천문학자인 코르니쿠스는 당시 진리처럼 믿어온 지구중심설 즉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해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바 있다.​유독 한국의 대학 강단 사학자들은 반도사관, 일명 식민사관학자들이 아니면 교수 임용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재야 사학자들 역시 반도사관에 비해서는 한층 진보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자신들의 기존 주장도 새로운 사실 앞에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 학문은 새로운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또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사실이 널려 있음에도 식민지 시대에 배웠던 대로 가르치고 있는 현재의 역사가들은 반성해야 한다.​한국의 고대사를 중국 땅에서 찾지 않고 한반도에서만 찾으면 역사의 문맹이라고 밖에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도 충분한데 여전히 기존 주장만을 하고 있다면 퇴행적 사고자,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문해력이 부족한 역사학자들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한국 역사책에는 유독 ‘비정한다’는 추정하는 단어가 넘치고 부산고구려$ 있다. 그것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앞선 식민지 시대에 주장했던 역사학자들의 주장대로 새로운 사실을 외면한다는 한국 역사계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비정하고 추정한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있는 사실대로 새롭게 역사를 해석하는 유일한 길이 중국 땅에 존재하는 우리네 역사 현장을 한국사에 편입하는 것이다.​지역의 위치가 사서에 있는 대로 해석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외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전처럼 중국에도 못가는 시대가 아니다. 언제든 갈 수 있으며, 구글 지도로 모든 것을 책상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사에서 거론되는 주요지역들이 구글 중국 지도에는 모두 명기돼 있다. 물론 중국말로 번역해서 찾아야 한다. 특히 대학에 있는 일명 강단 사학자들의 지식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자신들의 지도교수였던 식민사학자들이 쓴 역사서에 덧칠을 해가며 연구하는 한국사를 고집하는 것은 학자로서 양심도 없는 행위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있기에 식민사관학자들이라고 무시를 당해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때로는 언론사의 졸필로 부산고구려$ 식민사관학자가 민족사학자로 둔갑해서 언론을 부정하는 행위는 어떤 역사를 논하기에는 사고력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지만 지금도 중국에는 신라땅이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경상도가 있는 신라가 있고, 백제 지역명이 있는 곳에는 백제 지역명이 존재한다. 즉 한반도로 우리 영토를 규정하면 안 되는 이유가 너무도 많다.​이 모든 영토의 획정, 다른 말로 영토 해석의 사기는 이성계의 조선시대부터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조선을 만들면서 허약했던 그의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해 당시 명나라에게 고려 땅의 태반을 넘기면서 좁디 좁은 한반도의 한양 땅, 지금의 서울로 수도를 정해 영토의 구획을 다시 만들게 되면서 뒤틀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물론 당시에도 만주 일부는 조선 땅이었다. 임진왜란 때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이 요동에서 고려부흥의 난이 일어나 걱정을 했다는 편지내용의 중심지도 심양 땅이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조선 말기 고종 때나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곳 역시 상당 부분 조선 땅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역사는 살아 움직인다. 부산고구려$ 새로운 유물과 유적이 나올 때마다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과거의 역사 자료만을 진실인양 갖고 가르치고 있다면, 후대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거짓의 역사에서 진실의 역사로, 잘못 해석된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은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다음은 태초의 동북아 역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이성계의 조선시대 이전까지를 정리했다.■ 이성계 조선 이전 우리 역사국가연기왕 계보동시대 이웃국중심지환국(환인시대)BC7197~3897안파견부터 7명 아시아배달국환국시대)BC3898~2333거발한부터 18명 아시아고조선BC2333~239단군부터 47명하,은,주,춘추전국, 진대륙 동부북부여BC239~BC58해모수부터 7명(전)한나라대륙 북부동부여BC86~AD22해부루부터 3명(후)한나라,5호16국,수,당대륙 동부신라B.C.57~A.D.935박혁거세부터 56명회수,양자강고구리B.C.37~A.D.668주몽부터 28명북경백제B.C.18~A.D.660온조부터 30명산동대진국 발해698~926대조영부터 15명5대10국,거란, 신라하북성고려918~1392왕건부터 34명요, 금, 원, 명북경, 산동,양자강​역사는 새로운 사실 앞에 수정돼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눈감고 귀 닫고 기존 주장대로 역사를 해석한다면 역사학자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참고로 그동안 많은 자료를 통해서 작성한 자료이지만, 이것도 하나의 주장일 수밖에 없다. ​​기사 이동 시 본 기사 URL을 반드시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대입 성공의 길 알려주는 '나침반36.5'매거진 정기구독 부산고구려$ 이벤트 [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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